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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실화 > 일본의 식인살인마가 무죄를 받은 사연? ...미스테리 세상에이런일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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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실화 > 일본의 식인살인마가 무죄를 받은 사연? ...미스테리 세상에이런일이..

여러분의좋은날 2020. 4. 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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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먹었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사가와 잇세이

오늘 소개해드릴 이야기는

인육을 먹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받고 뻔뻔히 살아가고 있는

일본의 사가와 잇세이 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이자

무죄로 풀려난 살인마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커녕

자신의 살인행위를 책으로 써

막대한 돈을 벌고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그가 저지른 식인범죄는

그렇게 드물지는 않지만

처벌을 받지 않고

그 후 인기인처럼

다뤄진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가와 잇세이는

1949년 고베에서 태어나,

와코대학 문학과를 졸업 했다

칸사이 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이후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과정을 마친후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도중

1981611, 학급 동료였던

네덜란드 여성 유학생

르네 하르테벨트(Renée Hartevelt)에게

독일 시 해석을 도와 달라는

핑계로 집으로 불렀다

 

성인 여성의 신장보다 10cm 작은

151cm 정도에 불과하고

성인 여성의 평균 체중에도

못미치는 작은 체구였던 잇세이는

왜소한 자신의 모습때문이었는지

178cm나 되는 큰 키에 아름다웠던

르네에게 병적으로 집착했다

잇세이는 그녀가 시를 읽고 있는 도중에

등 뒤에서 목에 소총을 쏴 살해한다.

그러고 나서 끔찍하게

시간을(시체를 강간) 행했다

여기서 그치지않고

시체를 먹기로 결심한 그는

시체의 엉덩이부터 깨물었는데,

생각보다 엉덩이가 단단한 나머지

잠시 외출하여 도축용 칼을 사서

돌아와 시체를 차례차례

분해하기 시작했다.

엉덩이 살을 도려내서 날로 먹은 뒤

매우 맛있다고 생각했고,

가슴을 비롯한 여러 신체 부위를

요리해서 먹었는데

일부는 냉장고에 보관 했다고 한다

 

6월 13, 남은 시체를

여행 가방 둘에 나눠담아

불로뉴의 숲에 있는

연못에 유기하기위해

택시를 잡는다

택시기사는 그의 무거운 여행가방을

트렁크에 옮겨 닮는 것을 도와주다가

그 무게에 놀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혹시 시체를 유기하려

근처 공원에 가시는 겁니까?'

라는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공원에 도착한 그는

연못에 여행가방을 유기하지만,

공원에서 조깅하던

두 명의 목격자에의해

유기된 여행가방이 발견되었다.

이후 여행가방에서 나온

토막된 시체 조각을

수사의 시작으로

조사망이 점점 좁혀지며,

사가와 잇세이의

짐가방을 옮겨주었던

택시기사의 증언으로

그를 추적하는데 성공,

자택 수사를 진행했고

집안 여러군데에서

요리된 인간의 고기와

피해자의 신분증이 발견되었다

다급해진 그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일본으로 도주하려 했지만,

이틀 후인 615일에 체포됐다.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정신 감정을 위해 병원으로 보내져

2년간의 시간을 보냈지만,

의사가 그가 1살 때 앓은 장염을

뇌염으로 오인해

심신상실이라는 판정을 내려

불구속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심신상실로 처벌을 받기엔

부적합하다는 프랑스 법정의

판결에 의해

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고

교도소가 아닌

앙리 코란 정신 병원에

무기한 입원 조치되었다.

 

이 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틈틈이 쓴  소설

"안개속"()이 출간되는데,

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게된다

그후 잇세이는1984년에

국외 추방조치된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도쿄 도립 마츠자와 병원에

입원하였고,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정상인이 맞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본 경찰은 잇세이를

재판에 회부할 방침이었지만,

프랑스 경찰 측은

불기소 처분된 사람의

수사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며

수사자료의 인도를 거부하여

결국 처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약 2년이 채 안된

1986년 8월 12일에

일본에서의 공식적인

처벌 및 기록이 남지않은 채

깨끗하게 퇴원하게 된다

그는 범행 이전부터

일반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적 도착증을

종종 드러내곤 하였으며,

고교시절에는 정신과 의사에게

인육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자주 의논했지만,

의사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1972년 와코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인근에 사는 중년의

독일인 여성을 식인할 목적으로

자택에 침입하였지만

여성이 수면 도중 기척을 느껴

잠에서 깼고, 습격당하기 전에

매우 왜소했던 사가와를

큰 피해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이때 당시 경찰 및 피해자 모두

그의 범행은 당연하게도 인육이 아닌

강간이 목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체포된 그는 당시

구리타 공업의 사장이었던

그의 아버지, 사가와 아키라가

지불한 합의금에

고소가 취하되었는데,

이때 그의 식인에 대한

환상 및 집착을 발견해서

고칠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이 되었다

 

아무튼 이 식인 살인마가

전 세계에 끼친

여파는 엄청나서,

당시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 영감에서 일본인을 보고

기겁하는 외국인을 그리기도 했고,

이탈리아 여성과 결혼한

어느 한국 사업가가 쓴 책을 보면,

90년 초반에 아내와의

결혼을 허락받고자

아내의 처가로 갔더니,

아내의 할머니는

신을 무섭게 쳐다보고

할아버지는 사냥용 엽총과

허리춤에 단도를 차고

땀을 흥건히 흘리면서

계속 헛기침을 하며 하는 말이

"자네... 설마 우리 손녀

잡아먹지 않을 거지?"였다

놀라서 대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바로 사가와 잇세이 사건이

이탈리아에서

충격과 공포로 다뤄지면서,

아시아인은 서양의

어린아이와 젊은 여성의

생 인육을 즐겨먹는 민족이라는

인식이 이탈리아 깡촌

시골마을에까지

자리 잡았던 것이었다

물론 당시 국내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되었으며,

 

사설에서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만행과

빗대었을 정도였다

  일부에선 가십거리로

떠든 일화 밖에 없는데

전 세계라는 것은 좀 그렇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아시아 황인이 백인 여성을

식인한 사건이라서

당시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십거리가 된 사건이다

 

잇세이의 행보가 가관이었던 것은

이 식인살인을 바탕으로

자서전을 냈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1992년엔 일본의 정신 나간

방송인과 AV 제작자들은

그를 데려다 천박한 영상물을 찍어 팔았다.

음침한 지하에서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마약에 취하고

변태적인 성 행위를 하는 클럽인데,

그 장면 중 시체를 훼손하며

난교를 하는게 영화의 내용이다

 

이후 일본에서 여러 식당에 관한

리뷰를 잡지에 쓰는

저널리스트 활동도 했는데,

방송에서는 이런 점을

눈여겨 봤던지,

그를 요리방송에 초대해

생고기를 맛보며 평가하는

프로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그는 여성의 나체가

주된 그림들을 그려 돈을 벌었고,

2000년대 이후엔

자신의 살인 및 식인 체험담을

여러 매체를 통해

지겹도록 우려먹고도 모자랐는지

직접 만화로 그려

팔아먹기까지 했다

 

사실 식인 살인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터지지만,

그런 살인마들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처벌을 받는 게 보통이고,

살인범이 회고록이나

기타 그런 걸 낸다 해도,

판매수익은 모두

피해자 유족에게

가게 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시대가 달랐다고는 해도,

살인마, 그것도

식인 살인마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TV에 나오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웃으며 떠들어대고,

광고에도 나오며

스타처럼 취급받는 경우는

좀처럼 없는 경우라서

더더욱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검경에서

정신질환으로 오인해

판결을 내린것이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 후 잇세이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마냥 호의호식하며

지내고 있진 않은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많은 정신나간 러브콜들을 받던

1986년부터 1997년까지는

꽤나 이름을 날리며 벌이도

괜찮았던 모양이지만,

1997년 이후에도 돈도 벌고

명성을 유지할 목적으로 쓴

원고는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출판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신의 원고를 출간해주길

부탁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의 쓴맛을 본 그는

글쓰기 및 그림을 그만두고

직장찾기에 나섰다.

당연하게도 싸이코 중에

싸이코인 그를

고용하려고 하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었다.

궂은 일을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떳떳하게

본명을 밝히며

면접을 보러온 그의

당당함에 흥미를 느낀

정신나간 불어 학원 원장

그를 고용을 하려고 했지만,

학원의 모든 관계자와

선생들이 들고 일어나

출근도 못해보고

빛의 속도로 잘렸다

 

2005년엔 사업을 말아먹은

그의 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숨졌는데,

가족 및 친척들은

그가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가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직후 사망한 사업가의 아들로서

채무자들에게 빚을 모두 갚느라

집과 재산을 팔아야했고,

서민 공공 아파트로 강제 이사되어

직장도 없이 살았다

2009년에 미국&캐나다 잡지사인

Vice Magazine에서

그의 이후 인생에 대한

취재를 했는데,

'최소한 교도소에선 옷,

, 잘 곳을 주지만,

살인자로 낙인찍혀

사회에 내던져지는 건

정말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나마 인터뷰 당시엔

자신의 글을 적어 보내줄

잡지사가 한두군데는

있었던 모양이다

위 항목에 나왔듯이

반성하는 기색은 하나도 없이

잘 놀고 먹으며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것 같지만,

더 자극적이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는

잡지사의 입장으론

이 인터뷰들이 단지

좀더 자극적으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오히려 서민 아파트에 살며

이웃들 눈치를 보면서

글을 깨작거리며

잡지사에 1년에 한 두번

글을 싣는 것으로

먹고 사는 인생인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긴 힘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숨통이 트인것도 잠시,

2013년엔 뇌경색으로 쓰러져

신경계에 영구 손상을 입고,

지금까지도 병원에서

링겔꽂고 누워있다.

그나마 그를 딱하게 본

그의 형제가 고용해준

간병인에 의해 보살핌 받으며

생명을 유지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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